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오너, 2020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 선정, 2021년 ‘미쉐린 서울 멘토 셰프 어워드’ 수상, 2022년〈 포브스〉 선정 ‘50세 이상 성공한 아시아 여성 50인’까지. 이 모든 화려한 이력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수식한다.
조희숙 셰프는 1983년 세종호텔에서 요리사로 첫발을 내디딘 후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 신라호텔 같은 특급 호텔과 미국 워싱턴 주재 대한민국대사관저 총주방장 등을 두루 거쳤다. 그렇게 40여 년에 걸쳐 한 분야에 온 마음을 다해 매진하는 동안 자연스레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한식 파인다이닝의 기초를 다진 인물, 한식 대모, 셰프의 셰프 등으로 불리며 어느덧 한식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것. 이러 한 명성과 달리 여전히 겸허한 자세로 임하는 조희숙 셰프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옻칠된 신선로에 소담히 담아낸 요리는 한식 공간에서 사랑받는 코스 메뉴 중 하나다. 조희숙 셰프는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아시안 라이브’ 프로모션에서 이를 독특하게 해석한 뚝배기 신선로로 호평 받은 바 있다.
“제가 요리를 시작할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식문화 수준이 높지 않았어요. 당연히 요식업 종사자를 보는 인식도 좋지만은 않았죠. 요즘처럼 셰프가 각광받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주방에서 일하는 걸 남에게 굳이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제가 교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도 모두 만류했고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으로 이 길을 택했고, 결과적으로는 잘됐지만 그때는 큰 모험이었어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녹록지 않은 요리업계에 뛰어든 조희숙 셰프는 수십 년간 한식의 기본과 전통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터치를 가미한 요리를 선보였다. “문화의 생명력은 독특함과 고유성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전통을 바탕으로 현시대 흐름에 맞추면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특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소신으로, 저만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메뉴를 구상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죠.” 이렇게 지켜낸 한식의 정체성은 지난 2월까지 선보인 ‘우리 루이 비통’ 팝업 레스토랑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한식을 주제로 온지음 조은희·박성배 셰프, 밍글스 강민구 셰프, 리제 이은지 셰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들이 한데 모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좌) 한식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조희숙 셰프의 요리.
(우) 홍콩에서 열린 한식 이벤트에서 조희숙 셰프가 모수 안성재 셰프, 주옥 신창호 셰프와 함께 만든 보쌈김치.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 동안 글로벌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셰프 위주로 팝업 행사를 진행했지만, 그 전례를 깨고 국내 셰프에게 제안한 자리였죠. 그만큼 이 기회를 최대한 잘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최고 음식을 내기에 쉽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최대한 난제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한국 식문화를 보여주고 싶어 여럿이 뭉쳐 의지를 다졌어요. 덕분에 짧지만은 않은 팝업 기간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음식을 맛보고 진심으로 좋아해주시는 고객을 많이 만났고,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어요.” 이 프로젝트뿐 아니라 그동안 조희숙 셰프의 터치가 닿은 식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조 셰프의 공간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식당 이상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두루 보여 주는 곳”이라고. 조 셰프 또한 “음식을 만든 이의 진정성을 느끼고 맛있게 드시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감사하지만, 제 음식을 경험하고 위로받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라며 다시 한번 식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다.
평소 음식 관련 정보라면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부단히 습득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 영감으로 발현된다는 조희숙 셰프.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조희숙 셰프는 2021년 이후로는 개인 레스토랑 운영보다는 후배 양성과 한식 발전에 힘쓰고 있다. 한식을 전파하고 다음 세대의 성장을 돕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것. “이제는 현장 활동보다는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을 들려줄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죠. 개인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음식 만드는 일과 경영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저는 경영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요.”
이렇게 요리를 향한 진심 하나만으로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꾸준히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전문 분야의 자긍심과 사명감 덕분입니다. 주어진 삶을 보람차고 가치 있게 살아 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고, 그걸 구현하는 방법이 요리였어요” 라고 말하는 조희숙 셰프. 자신이 사랑하는 요리를 매개로 부단히 노력하며 진실되게 살아온 선배 셰프의 행보는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요리 인생 후반부에 전혀 의도하거나 생각지 못한 과분한 평가와 타이틀을 얻었어요. 그런 감사한 평가 뒤에는 많은 결함과 시행착오가 있죠. 그런 스스로를 잘 알기에 분에 넘는 평가와 칭송에 빚지고 있다는 마음까지 들어요. 저의 노하우가 한식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최선을 다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힘 닿는 데까지 소임을 다하고 싶다고 말하는 조희숙 셰프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Editor: Baek Ah Young